인문학/슬라보예 지젝8 슬라보예 지젝이 기독교가 근본적인 환상을 열어줬다고 보는 이유 유토피아 엄브라 이번 호 『유토피아』가 던지는 질문은 진정 유토피아가 존재하는지 여부, 혹은 유토피아의 표면을 찢어 드러내는 디스토피아의 속살에 관한 것이 아니다. 정신분석이론은 유토피아를 향한 인간의 지치지 않는 열망에서 우리가 속한 이 불가피한 상징계를 뚫고 나갈 해방의 실마리를 찾는다. 유토피아가 어딘가 미지의 시간과 장소에 오롯이 존재하는 완벽한 행복의 장소라는 생각은 자본의 값싼 대중적 이미지일 뿐이다. 우리는 더 이상 완벽한 사회의 가능성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여기 이곳과는 다른 지점, 다른 시간성을 향한 열망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주변엔 아직도 수많은 앨리스들, 링컨들이 있다. 자본의 명령에 따른 쾌락원칙에 붙들리지 않고 그 너머를 향해 달려나가는 주.. 2024. 1. 8. 코로나 바이러스와 지젝의 공산주의,『팬데믹 패닉』, 슬라보예 지젝 이제 8개월차로 접어드는 코로나19에 대한 지젝의 긴급 전언. 그가 책을 쓰던 시기와는 조금 달라졌지만, 세계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는 여전하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향한 그의 공산주의 이념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감염병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 아마 세계적 연대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각성케 했다는 점에서 코로나19의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을 듯 싶은데, 증상과의 불편한 동거가 주는 의미를 그의 글을 빌어 정리해 보았다. 목차 1.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2.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 2.1. 믿음이 부족한 죄 2.2. 자본주의로 인한 신계급주의 3. 코로나 시대의 공산주의 3.1. 공산주의 국가가 있기는 한가? 3.2. 지젝이 바라는 공산주의는?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 2020. 7. 15. 행복이 뭐가 문제야?『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슬라보예 지젝 이제는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마저도 잘못됐다고 하려고? 어쩌면 행복이야 말로 오늘날 건드려서는 안될 실재의 지점에 맞닿아 있지 않을까?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고 여기는 무언가로 말이다. 뭔가 쓰는 내내 중재를 하고 싶은 욕망이 계속해서 올라왔던 것은 나 또한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목차 1. 행복이란 이름의 거짓말 2. 이교적인 행복 3. 그것이 감추고 있는 것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같은 글이 중복 게시되면 문제가 될 수 있어 원글을 링크로 안내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 드리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https://readelight.com/blog/book/philosophy/%ed%96%89%eb%b3%b5%ec%9d%b4-%e.. 2020. 7. 10. 실재라는 이름의 십자가 (feat. 놀이터의 의미),『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슬라보예 지젝 라캉이 구조화한 실재는 상징화(의미화)에서 소외된 외상적 실체이다. 그 자체로 과잉을 나타내며 마주하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도록 만드는 이런 불편한 대상을 지젝은 왜 그렇게 강조하는 것일까? 알듯 말듯 뚜렷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이런 유령 같은 개념을 두고 다시 한 번 곱씹어보고 싶었던 것은, 이 부분을 이해하지 않고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목차 1. 실재란 무엇일까? 2. 불가능의 외상 3. 외상 극복 시도의 나쁜 예 4. 환상을 가로지르기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같은 글이 중복 게시되면 문제가 될 수 있어 원글을 링크로 안내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 드리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https://reade.. 2020. 7. 2. 슬라보예 지젝의 기독교 옹호, ④ 기독교에 있어서 유대교란,『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지젝과 함께 떠나는 종교여행의 마지막은 기독교의 자체적 모순점이라 할 수 있는 유대교이다. 유대교 자체가 어떻게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인지, 그리고 기독교가 그런 유대교를 품은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면서, 두껍지도 않은 책 한 권에 이런 지식들을 펼쳐낼 수 있는 그의 능력에 새삼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책읽기를 마치면서 (책에 대한) 마지막 성장 기록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목차 1. 주체란 무엇일까? 1.1. 주체 이야기를 먼저 한 이유 1.2. '불가능한 것'으로 정의되는 실재와 대상 a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2. 실재를 품은 유대교 3. 절단을 통해 진리를 완성하는 기독교 3.1. 증상 개념의 전환 3.2. 사랑의 의미 3.3. 기독교적 삶의 방식이란 4. 글을 마무리지으며 '.. 2020. 6. 21. 슬라보예 지젝의 기독교 옹호 - ③ 조화를 추구하는 이교, 분열시키는 기독교?,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고를 전복시키는게 지젝이 자주 취하는 입장(취미?)이라지만, 그런 점을 알면서도 그를 읽는 것은 늘 새롭게 와닿는다. 이교와 기독교를 함께 바라보는 오늘의 입장이 특히 그랬다. 과연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도발적이지만 결코 중심을 잃지 않는 그의 사유에 감탄하면서 어느덧 세 번째 글을 정리해 보았다. '슬라보예 지젝의 기독교 옹호'에 대한 이전 글들 ① 포스트모더니즘과 뉴에이지의 문제 ② 욕망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 목차 3. 조화를 추구하는 이교, 분열시키는 기독교? 3.1. 이교적 지혜 3.2. 인간 창조의 이유 3.3. 봉합할 수 없는 분리 3.4. 떼어내기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검색에 문제가 될 수 있어 본문 내용은 링크로 첨부드.. 2020. 6. 13. 슬라보예 지젝의 기독교 옹호 - ② 욕망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지젝에 따르면 욕망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욕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과 부정적으로 보는 것, 그리고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게 욕망을 온전히 긍정하는 것에 있지 않았을까? 날카로운 칼과도 같은 이러한 욕망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많은 고뇌가 필요하다. 이번 글에서는 서구 사회가 이런 욕망을 어떻게 긍정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슬라보예 지젝의 기독교 옹호'에 대한 이전 글 ① 포스트모더니즘과 뉴에이지의 문제 목차 2. 욕망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 2.1. 동양(불교)적 관점 : 욕망에 대한 부정적 이해 2.2. 서양적 관점 : 욕망의 가능성 탐구 1) 사라지는 중재자 2) 진리의 전제로써의 비진리 3) 실재의 역설 방문해 주셔서 .. 2020. 6. 8. 슬라보예 지젝의 기독교 옹호 - ① 포스트모더니즘과 뉴에이지의 문제,『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제목 자체만 놓고 봤을 땐 '절대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내용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지젝은 부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전면으로 드러낸다. 왜 그리스도적 유산은 싸울 가치가 있는가?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철학자, 정신분석가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온 (그리고 더 중요한, 기독교인이 아닌) 그는 어떤 이유에서 기독교적 유산이 현대에 있어 더 없이 중요하다고 본 것일까? 평소 그의 글을 좋아하면서도 특유의 난해함으로 인해 선뜻 다루지는 못했으나, 이제는 때가 (?) 된 듯 싶어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았다. 책의 분량 자체는 얼마 되지 않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워낙 방대해 중요한 내용들을 한 번에 정리하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차근 차근 그의 생각을 풀어내 보고자 한다. 오늘은 그가 '반계몽주의'라고 노골적으로 .. 2020. 5. 3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