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고를 전복시키는게 지젝이 자주 취하는 입장(취미?)이라지만, 그런 점을 알면서도 그를 읽는 것은 늘 새롭게 와닿는다. 이교와 기독교를 함께 바라보는 오늘의 입장이 특히 그랬다. 과연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도발적이지만 결코 중심을 잃지 않는 그의 사유에 감탄하면서 어느덧 세 번째 글을 정리해 보았다.
'슬라보예 지젝의 기독교 옹호'에 대한 이전 글들
목차
3. 조화를 추구하는 이교, 분열시키는 기독교?
3.1. 이교적 지혜
3.2. 인간 창조의 이유
3.3. 봉합할 수 없는 분리
3.4. 떼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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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에 문제가 될 수 있어 본문 내용은 링크로 첨부드리니,
번거로우시겠지만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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