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이 구조화한 실재는 상징화(의미화)에서 소외된 외상적 실체이다. 그 자체로 과잉을 나타내며 마주하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도록 만드는 이런 불편한 대상을 지젝은 왜 그렇게 강조하는 것일까? 알듯 말듯 뚜렷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이런 유령 같은 개념을 두고 다시 한 번 곱씹어보고 싶었던 것은, 이 부분을 이해하지 않고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목차
1. 실재란 무엇일까?
2. 불가능의 외상
3. 외상 극복 시도의 나쁜 예
4. 환상을 가로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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