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마저도 잘못됐다고 하려고? 어쩌면 행복이야 말로 오늘날 건드려서는 안될 실재의 지점에 맞닿아 있지 않을까?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고 여기는 무언가로 말이다. 뭔가 쓰는 내내 중재를 하고 싶은 욕망이 계속해서 올라왔던 것은 나 또한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목차
1. 행복이란 이름의 거짓말
2. 이교적인 행복
3. 그것이 감추고 있는 것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같은 글이 중복 게시되면 문제가 될 수 있어 원글을 링크로 안내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 드리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인문학 > 슬라보예 지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라보예 지젝이 기독교가 근본적인 환상을 열어줬다고 보는 이유 (1) | 2024.01.08 |
---|---|
코로나 바이러스와 지젝의 공산주의,『팬데믹 패닉』, 슬라보예 지젝 (0) | 2020.07.15 |
실재라는 이름의 십자가 (feat. 놀이터의 의미),『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슬라보예 지젝 (4) | 2020.07.02 |
슬라보예 지젝의 기독교 옹호, ④ 기독교에 있어서 유대교란,『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2) | 2020.06.21 |
슬라보예 지젝의 기독교 옹호 - ③ 조화를 추구하는 이교, 분열시키는 기독교?,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0) | 2020.06.13 |
댓글